등산 중에 

반대편에서 산을 내려 오던 사람이 내 앞에 가던 사람에게 내려가는 길을 물었다.

그러자 익숙한 듯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가다가 왼쪽으로 내려 가세요”라고 말했고,

물어보던 사람은 “왼쪽이요?”이라고 다시 물었다.

“가다가 첫 번째 길에서 왼쪽으로 가도 되고, 두 번째 길에서 빠져도 됩니다.”라고 말하고 다시 걸어 갔다.

첫 대답을 듣고 순간적으로 "왼쪽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묻고 답할 때 흔하게 하는 실수로

가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왼쪽이지만, 반대로 오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오른쪽 일 수 있기 때문이다.


왼쪽이 맞았다.

상대의 입장에서 답변한 것이었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씨에 감탄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다 보면, 항상 나의 입장에서 이야기 하게 된다.

내가 아는 건 상대도 안다고 생각하고 말하거나

단어만 뱉어놓고 아예 알아서 뭔가를 해주길 원하는 등

상대의 입장에서 이야기 할 때 보다, 나의 입장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 대부분 일 것이다.

좀 심한 사람은 자신이 편한 데로 이야기 하고,

“재는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자주 하기도 한다.

직장 생활이나 갑과 을의 관계에서는 아주 흔하게 봤었다.

그렇게 길을 조금 더 갔다.

어느 길로 갈까 싶어서 표지판을 보다 그만 웃고 말았다.

직진을 하면 정상으로 가고, 우측으로 빠지면(내려 올 때는 왼쪽이 된다.) 

아까 물어보던 사람이 원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길을 물어보던 사람은 갈림길을 조금 전에 지나쳐 왔고

자신이 지나친 건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인지 몰라서 물었던 것 같았다.

길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있었다면 되돌아 가서 내려가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면 한 10~20분 정도 시간을 줄였을 것이다.

더욱이 이 갈림길로 내려가면 계곡이 있어서 쉬어가기 좋다.

(몇일전 쏟아진 폭우로 계곡의 물이 정말 좋았다.)

지나쳐서 내려가는 길은 능선을 따라 걸어가야 해서 그늘이 별로 없고 덮다.

30~40분을 가야 왼쪽으로 빠지는 길이 나오기 때문에 계속 왜 왼쪽에 길이 없지라면서 내려갔을 수도 있다.

그날찍은 사진

조금의 잘못된(?) 대화로,

목표는 이루었지만 시간과 즐거움을 제법 많이 놓친 것이다.

“지나온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라며 질문을 했다면 좀더 조심스런 대답이 있지 않았을까?

첫 번째 왼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30~40분을 걸어가야 나오기 때문에 답변이 조심스러워 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답변하던 사람이나 뒤에 있던 나도 제대로 길을 좀더 알았거나 (지식이 더 있었거나)

답변을 길게 했더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 40분 쭉 내려가시면, 왼쪽으로 내려 가는 길이 보입니다. 그 길을 따라 가시면 되요”

40분뒤에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는 말을 들었다면 지나쳤다는 생각을 했거나,

자신의 생각과 다른 답변에 질문했던 사람이 이상하게 생각해서 더 상세하게 질문했을 것이고,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답변을 듣고 얼마나 더 가야 하냐를 물어봐도 좋았을 것이다.

 

일을 하다 보면 이와 같은 서로간의 대화 문제로 항상 많은 문제가 생겼다.

몇 년 전에 SI 개발을 하면서 있었던 일이다.

어떤 기업의 시스템 구축을 하기 위해, 분석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해당 기업의 임원 분이 계속 엑셀 다운로드 기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 했다.

어떤 기능을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나면, 

리스트 부분에서는 꼭 엑셀 다운로드도 있어야 한다고 강조 했다.

엑셀을 참 좋아하는 분이라고 생각하다,

어느 날 잡담 중에 지나가는 말로 “왜 그렇게 엑셀 다운로드를 모든 기능에 넣습니까?”라고 물어봤다.

“데이터가 언제 사라질지 모르니, 개인이 등록한 정보는 엑셀로 다운받아서 보관하게 해줘야 합니다.”

다른 회사에서 일하다 이직하고 처음 맡은 SI라며 

이전 회사에서는 자주 데이터가 없어지는 문제가 생기거나, 저장 공간 문제로 데이터를 삭제한다고 했다.

데이터 베이스에 데이터가 저장되면 누군가가 삭제할 수 없고, 

개인이 등록한 정보는 개인이 관리하는 기능(myPage)에서 한 눈에 볼 수 있다고 설명했고, 

엑셀 다운로드는 줄이기로 했었다.


고객은 자신의 사정과 상황에 따라 말을 하고,

개발자는 상세한 이유를 모르니 말한 데로 개발을 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안해도 될 일을 하거나,

처음엔 사소한 것들이 프로젝트 후반기로 가면 눈덩이처럼 커져서 큰 문제가 되기도 한다.

SW 개발은 내가 나에게 발주하는 상황보다,

고객이나 직장 상사와 같은 타인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 지는 경우가 더 많다.

타인에 의해 진행되기 때문에

제대로 된 개발과 빠른 개발을 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기본 능력은 대화 능력인 것 같다.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각자의 위치에서 방향을 이야기 해서 힘들 수 있고,

서로 가지 않은 길을 가다 보니 경험 부족등으로 이리 저리 방황할 수도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건 서로가 서로에게 계속 물어보고 답변해 가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각자의 일이 바쁘거나, 사람이 싫거나, 대화가 싫어서 등으로 그러지 못하는 것 같고,

그렇게 아주 먼 길을 돌아가는 걸 많이 봤다.

 

계곡에 발 담그고 앉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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